티스토리 뷰
목차

부침개를 바삭하게 만들려고 반죽에 맥주를 넣는다는 것, 저도 한동안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부침개 골목에서 35년을 버텨온 박정숙 어머니께서는 맥주가 오히려 바삭함을 망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직접 비법을 전수받아 써봤더니, 정말이지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맥주가 부침개를 바삭하게 한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맥주 반죽이 튀김을 바삭하게 만든다는 건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맥주 속 탄산가스(CO₂)가 반죽 안에서 기포를 만들고, 이 기포가 열을 받아 팽창하면서 조직을 가볍고 바삭하게 만드는 원리입니다. 여기서 탄산가스란 액체 속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를 의미하는데, 가열하면 순식간에 빠져나가며 반죽에 미세한 공극을 남겨 식감을 가볍게 해줍니다.
문제는 그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느냐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막 부쳐냈을 때는 분명 바삭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눅눅함이 올라왔습니다. 수분 흡수율(moisture absorption)이 높은 밀가루 반죽 특성상, 탄산이 만든 기공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주변 수증기를 빠르게 흡수해버리는 겁니다. 수분 흡수율이란 반죽이 대기 중의 수분을 끌어당기는 정도를 뜻하는데, 이 수치가 높을수록 시간이 지나면 눅눅해지기 쉽습니다.
거기에 맥주 특유의 보리 향이 부침개 본연의 고소함과 섞이면 맛의 균형이 흔들린다는 것, 저도 먹으면서 막연히 느끼던 부분이었는데 35년 경력의 어머니께서 정확하게 짚어주시는 걸 듣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탄산가스(CO₂)가 만드는 바삭함은 조리 직후 10~15분 내에 급격히 소실됨
- 밀가루 기반 반죽은 수분 흡수율이 높아 기공 유지가 어려움
- 맥주의 보리 향이 부침개 재료 고유의 풍미를 덮을 수 있음
- 장시간 장사 현장에서는 눅눅해지는 속도가 곧 상품성 저하로 직결됨
튀김가루와 감자가루, 두 재료가 만드는 구조적 바삭함
어머니께서 맥주 대신 쓰시는 것이 바로 튀김가루와 감자가루의 조합입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튀김가루야 튀김에 쓰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원리를 파고들어 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튀김가루에는 베이킹파우더와 전분이 이미 배합되어 있습니다. 베이킹파우더(baking powder)란 가열 시 이산화탄소를 방출해 반죽을 부풀리는 화학 팽창제를 뜻하는데, 맥주의 탄산과 달리 열을 가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기포를 공급한다는 점이 핵심 차이입니다. 즉, 부치는 내내 바삭함의 원천이 계속 만들어지는 구조입니다.
감자가루의 역할은 더 흥미롭습니다. 감자 전분(potato starch)은 가열하면 강한 겔화 반응을 일으킵니다. 겔화 반응이란 전분 입자가 수분을 흡수해 팽윤하다가 열로 인해 굳어지는 현상인데, 이 과정에서 반죽 표면에 치밀하고 단단한 피막이 형성됩니다. 바로 이 피막이 외부 수분의 침투를 물리적으로 차단해주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눅눅해지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집니다. 식품과학 분야에서 감자 전분이 바삭한 코팅 유지에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이미 나와 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제가 직접 두 반죽을 나란히 비교해보았더니, 감자가루를 넣은 쪽은 부쳐낸 지 30분이 지나도 손으로 눌렀을 때 크런치(crunch)한 저항감이 살아있었습니다. 반면 맥주만 넣은 반죽은 이미 축 처져 있었습니다. 데이터로 보면 명확한 차이였습니다.
35년 비법을 실제로 써보니 이렇게 달랐습니다
비가 오던 주말 저녁, 제가 직접 반죽을 만들어봤습니다. 일반 부침가루에 튀김가루와 감자가루를 섞고, 물은 차갑게 유지하면서 반죽 점도(viscosity)를 맞추는 것이 포인트였습니다. 점도란 액체가 흐르는 데 저항하는 정도를 뜻하는데, 부침개 반죽에서는 너무 묽으면 기름을 많이 흡수하고 너무 되직하면 속이 익지 않아 적절한 농도 유지가 식감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얹었을 때 지글거리는 소리가 다르다는 걸 바로 느꼈습니다. 맥주 반죽 때보다 튀기는 듯한 소리가 더 선명하게 났고, 표면이 굳어가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뒤집었을 때 색이 균일하게 노릇노릇하게 올라왔고,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보면 과자 껍질처럼 바스러지는 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속은 또 달랐습니다. 감자가루의 전분이 열 응고 과정에서 쫄깃한 탄성을 만들어줘서, 겉의 바삭함과 속의 쫀득함이 동시에 살아있는 이른바 겉바속촉(겉은 바삭, 속은 촉촉·쫄깃) 식감이 완성됐습니다. 한국식품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전통 전 요리의 식감 만족도는 겉면의 크런치 지속 시간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식품연구원).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흔히 전 요리는 기름지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감자가루와 튀김가루 조합은 오히려 기름 흡수량을 줄여주는 쪽으로 작용했습니다. 피막이 촘촘하게 형성되면서 내부로 기름이 스며드는 것을 억제하는 원리입니다. 한 입 베어물었을 때 기름 무게감 없이 가볍고 선명한 바삭함이 느껴졌고, 가족들 반응도 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튀김가루랑 부침가루를 같이 써도 되나요?
A. 네, 섞어 쓰는 게 오히려 낫습니다. 부침가루만 쓰면 속이 무거워질 수 있고, 튀김가루만 쓰면 반죽이 너무 묽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비율을 조정해봤더니 부침가루 기본량에 튀김가루를 20~30% 비율로 섞었을 때 식감 균형이 가장 좋았습니다.
Q. 감자가루는 감자 전분이랑 같은 건가요?
A. 감자가루와 감자 전분은 엄밀히 다릅니다. 감자가루는 감자 전체를 건조·분쇄한 것이고, 감자 전분은 전분만을 분리한 것입니다. 부침개 반죽에서 바삭함과 피막 형성 효과를 노린다면 감자 전분이 더 직접적으로 작용합니다. 두 가지가 없을 때는 일반 옥수수 전분으로 대체해도 어느 정도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Q. 반죽에 물 대신 탄산수를 써도 되나요?
A. 쓸 수는 있지만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탄산수의 탄산은 반죽에 넣는 순간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차가운 물을 써서 반죽 온도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 탄산수를 쓰는 것보다 실제 바삭함 유지에 더 효과적이라는 게 제 경험상 결론입니다.
Q. 이미 눅눅해진 부침개를 다시 바삭하게 만들 수 있나요?
A. 에어프라이어를 180도로 예열한 뒤 3~4분 돌리면 표면 수분이 날아가면서 어느 정도 바삭함이 살아납니다. 다만 처음 부쳤을 때의 식감을 100% 되살리기는 어렵습니다. 감자가루 피막 덕분에 바삭함이 오래 유지되니, 처음 반죽부터 비법 재료를 쓰는 편이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결론
맥주를 넣어야 바삭해진다는 공식, 틀린 건 아니지만 완전히 맞지도 않았습니다. 탄산이 만드는 순간의 바삭함은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보리 향은 부침개 본연의 풍미를 가렸습니다. 반면 튀김가루와 감자가루 조합은 조리 과학적으로도, 실제 식탁 위에서도 훨씬 납득이 가는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35년 장인의 비법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결국 그 내공은 수만 번의 반죽과 실패에서 나온 데이터입니다. 제가 단 한 번 써봤는데도 이 정도라면, 꾸준히 응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이번 주 비 소식이 나오면 주저 없이 다시 부쳐볼 생각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shorts/Ap2n4R9bKgs?feature=share